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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칵테일 #술다방



크리스마스 in 술다방 --







#크리스마스 #한정판칵테일 #술다방 #을지로





편에서 이어서 -



바텐더는 갑자기 통 하나를 꺼내더니 안에 든 하얀 물질에 토치를 가져다 댔다. 갑자기 고소한 버터 향 같은 것이 바 안에 퍼졌다.




“이게 뭐에요...?”

“곧 아시게 될 거에요”

바텐더는 싱긋 웃으며 녹아내린 액체를 마티니 글라스 안에 붓고 골고루 흔들었다. 가만히 보니 글라스 속 액체는 조금씩 하얗게 굳어갔고 얼룩처럼 빨간 시럽이 대리석 같은 무늬를 이루고 있다. 잠시 후 그는 조그만 아로마 병 같은 것을 꺼내더니 손등에 문지르고 우리에게 향을 맡아 보라고 한다.


“이거 꼭...은은한 소나무 향 같아요.”

“네, 맞아요. 이건 앙고스트라 비터라고 원래 약용으로 쓰던 리큐르인데 여러 가지 약초가 들어가 나무 향이 나죠.”


하얗고 빨간 ‘마블링(?)’이 만들어진 글라스 안에는 노르스름한 술이 먼저 부어졌다.


“칵테일 베이스는 죽력고예요. 대나무즙에 댓잎과 각종 향료를 넣은 전통주인데 조선시대에 3대 명주로도 꼽혔던 유명한 술입니다. 여기에 엘더 플라워 리큐어와 오미자청을 넣으면 완성이에요.”

 




“너무 예쁘다~!”


완성된 칵테일을 보고 동생은 탄성을 질렀다. 조심스럽게 향을 맡으니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거, 코코넛이네요?”

“네 맞아요. 아까 보여드린 기법은 리밍이라고 코코넛 오일을 잔에 발라 무늬를 낸 거에요. 빨간 빛깔은 그레나딘 시럽이구요. 죽력고 베이스도 그렇고 앙고스트라 비터, 엘더플라워를 넣어서 크리스마스 트리 이미지를 형상화했어요.”


한 입 조심스럽게 맛보자 은은한 코코넛 향에 뒤이어 석류의 새콤함이 코를 찌른다. 술을 즐기지 않는 동생이지만 이런 맛이라면 좋아할 듯 싶다.


“언니, 이거 옛날에 언니가 남친 준다고 만든 과자 있지? 그거랑 비슷한 맛이 나.”

“아... 코코넛 로셰?”


크리스마스에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한다고 처음으로 도전한 베이킹이 바로 코코넛에 달걀 흰자를 넣어 반죽한 코코넛 로셰 쿠키였다. 그날 남친은 향이 이상하다며 한두 개를 먹고 말았고 속상했던 나는 과자를 동생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술, 아빠가 만들었던 트리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 나무 향이라 해서 이상할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넘어가네...달콤하고, 고소하고, 새콤한 맛이 다 들어 있어.”


크리스마스는커녕 결혼기념일도 제대로 안 챙기던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 주던 몇 안 되는 연례행사가 바로 직접 작은 소나무나 노간주나무 분재를 사와 직접 해주신 트리였다. 노간주나무의 빨간 열매를 보면 아무 장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크리스마스 기분이 났다. 문득 어린 시절 동생과 트리 앞에서 선물을 풀어보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너랑 나랑...그땐 토닥거리면서도 친했는데...지금은 왜 이렇게 서먹해졌을까..?”

“...아직 안 늦었어, 언니..”


묘한 동생의 웃음이 스치며 다시 눈이 떠졌다. 이른 아침인 듯 한데 바깥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잠시 멍해진 나는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고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박은혜, 언제 오는지 미리 얘기해. 데리러 나갈게...”


창문을 열었다. 코코넛 가루처럼 새하얀 눈이 기분좋게 공중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2018년 12월 26일 을지로 일대


이틀 연속 이상한 꿈을 꾸었던 탓일까? 눈 오는 날이면 꼼짝하기 싫어지는 나이지만 오늘은 밖으로 나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인쇄 상태나 체크하고 올까?’


사실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딱히 밖으로 나갈 핑계거리가 떠오르질 않았다. 주섬주섬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코트를 입고 얼마 전 새로 산 부츠를 신으려는데 카톡이 왔다. 고지연이다.


“팀장님! 오늘 쉬시죠? 저랑 놀아주세요!”


아니 다낭에 놀러간다고 잔뜩 들떴던 녀석이 왠일로...?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려는데 다시 톡이 온다.


“어제 남친하고 대판 싸우고 열 받아서 밤비행기로 돌아와 버렸어요. 오늘 집에 있긴 싫은데 만날 사람도 없어요..ㅠ .ㅠ”


뭔가 안습한 상황이다. 나는 재빨리 답문을 보냈다.


“이 사람아, 한창 젊은 나이에 같이 놀 친구도 없어?”

“아시잖아요, 팀장님. 저 예전부터 여자 친구 없었던 거...”


하긴 입사 때부터 왠지 얄미운 구석이 있었던 지연은 동성 친구와 어딘가 놀러 간다거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솔직히 살갑게 대하고 싶은 후배는 아니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뭐 괜찮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을지로 인쇄소 체크하러 가니까 심심하면 따라오던가.”

“정말요, 팀장님? 지금 나가요!”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밖으로 나왔다. 눈발은 아까보다 잦아들어 있었다. 길도 미끄럽지 않고 뽀송한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인쇄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길가를 걸었다. 간단히 인쇄 상태를 살펴보고 별다른 이상이 없어 돌아가려는데 문득 2층 건물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왠 캬바레?’싶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빨간 불빛이 흘러나오지만 캬바레는 아니고 옛날식 다방인 모양이다.


‘요즘도 이런 다방이 남아 있구나..’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장소를 지나치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노란 표지판에 ‘술다방’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상에...두 번이나 꿈에 나타났던 바로 그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칵테일을 만들어 준 청년 바텐더도 그 자리에서 부지런히 컵을 닦으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꿈은 아닌 거 같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여기...영업 하는거에요?”


바텐더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틀림없는 꿈속의 그 남자다.


“물론이죠. 저희 얼마 전부터 낮술 타임이 생겨서 오후 2시부터 시작합니다.”

“아...앉아도 될까요...?”

“어서 오세요. 일행은 있으신가요?”

“...네. 곧 올거에요.”


나는 다시 꿈속에서처럼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소한 인절미를 연상시키는 과자가 눈앞에 놓였다.


“혹시 일행 분 금방 안 오시면 서비스로 한잔 드릴까요?”

“네...부탁드립니다.”

“오늘쯤 오시는 손님들은 크리스마스 때 과음하신 분들이 좀 있더라구요. 상큼하니 기분전환에 좋은 칵테일은 어떨까요?”

“좋아요!”


나는 조심스레 과자를 씹으며 바텐더의 얼굴을 살폈다. 꿈 속 남자와 닮았지만 왠지 다른 듯도 보인다.




곧 튤립 모양의 잔에 칵테일이 담겼다. 연한 초록색에 파인애플 장식이 된 것이 열대가 연상되는 비주얼이다. 한 입 맛보니 파인애플과 레몬, 멜론맛이 섞인 트로피컬 주스 같은 달콤함이 입안을 감쌌다.


“이 칵테일의 베이스는 이강주에요. 배, 생강, 계피향이 나서 해장술로 좋다는 분들도 계시구요. 여기에 여성분들 취향에 맞춰서 과일주스와 리큐어, 탄산이 들어간 토닉워터를 섞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모금을 다시 마셨다. 순간 어제의 두 칵테일 맛도 새삼 떠올랐다. 크리스마스에 기억나는 많은 것들 중 처음에 나는 첫사랑을, 두 번 째 날에는 가족을 만났다. 그럼 세 번째는...?


술맛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는데 다시 카톡이 울린다.


“팀장님, 저 을지로 근처에요. 어디로 찾아가면 돼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답톡을 하려는데 다시 다른 알림이 떴다. 서과장님이다.


“은주씨, 미안한데 혹시 시간 괜찮아? 친정 부모님 애들 데리고 시골 가셨고 신랑은 또 외박한대. 모처럼 자유시간이 생겼는데 갈 데가 없어...”


문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방금 전 떠올리려 했던 세 번째 존재가 바로 이들임을 알게 됐다. 나는 두 사람에게 술다방의 위치를 전하고 같은 칵테일 두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여자 셋이 낮술이라니, 남들한테는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활력 충전의 시간이 될 듯하다.
























  정세진 anais21@hanmail.net

   술 권하는 유목민.

   낯선 문화, 낯선 술을 찾아 헤매는 농경사회 노마드로 살아가고픈.


제목 크리스마스 in 술다방 -下-
  • 작성일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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