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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칵테일 #술다방



크리스마스 in 술다방 -上-







#크리스마스 #한정판칵테일 #술다방 #을지로





2018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잡지사 사무실


“자, 여러분...오탈자 없나 다들 체크 했죠? 마지막으로 점검 끝나시면 인쇄소로 갑니다.”

“야~신난다! 이제 올해 마지막 호도 마쳤네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무실 막내 고지연이 씩씩하게 외쳤지만 왠지 다들 기운은 없어 보인다. 하긴 특집기사 인터뷰가 지연되는 바람에 거의 3일 밤을 샌 후니 그럴 만도 했다. 어쨌든 상황이 대충 종료된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하나하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뭐하세요? 전 남친하고 베트남 다낭에 가기로 했는데. 오늘 밤 비행기 타요”

“지연씨는 젊어서 좋겠네. 우리야 뭐 집에서 쉬는 거지. 서 과장님은 애들하고 놀아줘야 하고.”


3 살배기 아들을 어린이집에, 돌잡이 딸을 친정에 맡기고 온 서과장은 다른 누구보다 귀가를 서두르는 분위기다. 나 박팀장, 박은주는 침침한 눈에 인공눈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며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맨날 라이프 스타일, 여행 기사 쓰면서 정작 우리는 월차 한번 내기 힘들고... 수당 필요 없다고 대표님한테 못 박아놨으니 난 26일까지 푹 쉴 거야.”  


몸은 지쳐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신이 났다. 퇴근 후, ‘그곳’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마감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휴식 공간 말이다.


“근데 쉬신다는 분 치고는 어째 쌩쌩해 보이네요.”

왠지 뜨끔해진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재빨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날을 위해 일부러 차도 놓고 온지라 곧장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뭐가 나올까....크리스마스니 뭔가 특별메뉴가?’

전철을 타고 세 정거장을 가면서 들뜬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벌써부터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나는 항상 지나가던 길을 지나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OO키친을 사랑해주시는 고객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금년도 최저임금 인상과 건물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더 이상 영업이 어렵게 됐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뵐 수 있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사장의 사과문은 꽤나 길었으나 나는 더 이상 읽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아놔, 나만의 유일한 힐링 공간이 사라지다니... 망할 건물주, 망할 최저임금....속으로 온갖 욕이 나왔다. 고객이 아니라 맛집 기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는 건 여러 모로 힘이 빠지는 일이다.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밀려왔다. 편의점이라도 들를까 했지만 일단은 좀 쉬어야겠다 싶어 집으로 향했다.    

   

10평이 채 되지 않는 원룸은 이 널따란 서울에서 내가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온열매트를 켠 나는 바닥에 풀썩 드러누웠다. 흙탕물처럼 질척질척한 잠이 밀려오며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졌다.


“은주야, 박은주...어서 일어나. 이 좋은 날 잠만 자며 보낼 거야?”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흐릿한 눈을 비비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응시했다.


“...오빠?”

그였다. 내 첫사랑. 매우 처참한 흑역사 이후 떠올리기조차 싫었던 얼굴이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넨다.


“우리 학생 때 자주 가던 거기 기억나지?”

“응?”


정신을 차려 보니 LP레코드가 잔뜩 쌓여있는 어느 바에 앉아 있었다. 그와 학생시절 즐겨 찾던 음악카페 겸 술집이다. 아무도 없나 주위를 둘러보는데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한 청년이 홀연히 나타났다.


“한 잔 하시겠어요? 여긴 크리스마스에만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바입니다.”

“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청년의 얼굴과 어느새 앞에 놓인 메뉴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가 있나요...?”

“전통주 칵테일이에요. 딱 오늘 하루만 드실 수 있는 메뉴가 있는데 어떠신가요?”

“에...어떤 술이길래...?”

“안동소주 베이스에 카시스, 론디아주 151을 배합한 샷 칵테일이죠. 불을 붙여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엔 그만입니다.”






안동소주라...취재처 사람들이랑 마셔본 적은 있는데, 그땐 너무 정신없는 상황이라 어떤 맛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청년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베이스 술을 붓고 순식간에 불을 붙여 내놓는다. 마치 작은 두 개의 촛불처럼 아른거리는 파란 불꽃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 정식 이름은 없지만 제 나름대로 붙여 본 별명이 있어요. 첫사랑이라고.”

“첫사랑이요?”

“론디아주 151은 75도 독주고, 보시다시피 이렇게 불이 붙죠. 술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다음날 고생하시기도 해요. 하지만 독한 와중에도 은은한 단맛이 있는데 카시스가 여기에 상큼함을 더해줘요. 안동소주의 역할은 여기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거라고 할까요?”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니 첫사랑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도 같다.


“그런데 이거...마시다 잘못해서 데지 않나요? 불을 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손님은 아마 오래 전에 드셔 보셨을 걸요?”


이 남자는 내 과거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시절 그와 보낸 첫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첫사랑 그가 나를 난생 처음 가는 양주바로 안내했고 불붙인 잭 다니엘 몇 잔을 겁도 없이 넘기고는 생전 처음 필름이 끊겼던 기억도... 순간 흑역사가 재생되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저...그 기억은...?”

“첫사랑한테 데였다는 분들 많죠? 하지만 사실은 처음이니 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요? 뜨겁고 독한 사랑을 훌쩍 삼켜버릴 용기도 그 시절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죠.”


그 말을 듣자 뜨거운 불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첫 잔을 들이켰다. 뜨겁고, 달콤하면서 쓰디쓴 맛이 목구멍에서 올라왔다. 아프다, 후회된다, 부끄럽다.... 첫사랑이 끝났을 때 들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하지만 다시 그 뜨거운 불을 삼켜보니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다. 끈적하고 다소 묵직한 듯한 단맛이 잔향처럼 입안에 남는다. 나는 한 30초 정도 눈을 감고 안동소주의 은은함과 카시스 특유의 베리향을 음미했다. 오래 전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곧이어 두 번째 잔을 들이켰다. 아까보다 더욱 풍성하고 복잡한 향이 번지면서 나는 강렬하고도 아련한 충족감에 다시 눈을 감았다.


 


2018년 12월 25일 오후, 신촌의 한 원룸


몇 시간이나 잠이 들었던 것일까... 눈을 떠보니 주변은 어둡다. 커튼 탓인가 하고 창밖으로 다가갔다가 바깥도 이미 어두침침해진 것을 확인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후 2시다.


“무슨 꿈이 이렇게 생생하지...”


그런데 이상하다. 꿈속에서 느꼈던 뜨거운 불 맛과 향기, 약간의 취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이다. 침울한 기분으로 잠들었던 어제와는 달리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진 것도 같다. 머리를 흔들어 졸음을 쫓고 보니 배가 고파왔다.


“먹을 게 어디 없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찬장을 뒤졌다. 다행히 며칠 전 마트에서 사온 즉석 설렁탕이 눈에 들어온다. 전자레인지에 설렁탕을 넣고 나서 밥솥에 아주 조금 남은 밥을 펐다. 작업과 식사를 동시에 해결하는 상 위에 깍두기를 곁들인 간소한 식사가 차려졌다. 한술 뜨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익숙한 번호다. 받을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지만 피했다가는 나중에 일이 더 골치 아파질까 싶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것아, 너 손가락이라도 부러졌니? 휴일인데 에미한테 전화 한번 하면 어디 덧나?”

“아씨...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어요. 어제까지 마감 때문에 정신 없었다구요.”

“퍽이나... 그보다 니 동생 취직시험 보러 올라가는 건 알고 있니?”

“아, 어디 면접 보나봐요?”

“언니가 돼서 한다는 소리가...너희 집에서 며칠만 데리고 있어. 내가 반찬이랑 싸보내마.”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대학 졸업 후 1년에 한번 볼까 말까였던 동생이 갑자기 온다니... 지저분한 방과 쌓여 있는 설거지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녀석 또 집에 오면 한바탕 뒤집어 놓을텐데...’


고등학생 때부터 살림을 도맡아 할 정도로 깔끔쟁이인 동생이 온다니 부담부터 든다. 아...귀찮아... 밥을 먹고 잠깐 산책이라도 나갈까 싶었지만 갑자기 우울해졌다. 냉장고에 가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당분간 혼술도 어렵겠구나...’


병뚜껑을 따고 한 잔을 원샷했다. 빈속에 갑자기 술이 들어가서인가 순간 어지러워졌다. 조금 전 틀어 놨던 TV 예능프로의 웃음소리가 희미해진다. 어느 순간 나는 밥숟가락을 쥔 채 가물가물 눈을 감았다.


“.......”

“....박은혜?”


원피스 차림에 단발머리를 한 동생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이는 어리지만 오히려 언니 노릇을 했던 녀석인지라 솔직히 반갑기보다는 부담스럽다.


“너 나 들볶으려고 서울 온다고 한 거니?”

내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하자 동생은 빙그레 웃었다.

“아니, 언니랑 술 한잔 하려고...”

말을 마친 동생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얼떨결에 끌려가 보니 어젯밤 보았던 바로 그 바였다. 그런데 어두침침했던 어제와는 달리 분위기가 다소 환해진 듯 하다. 여기저기 반짝거리는 전구로 장식돼 있고 한 켠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인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어제 만난 그 바텐더가 모습을 나타냈다.


“오늘은 두 분이 오셨네요.”

바텐더의 표정도 왠지 어제보다 한결 밝아 보인다. 어제는 내가 너무 침울해 있었기 때문일까. 메뉴판이 눈앞에 놓여 지고 동생은 크래커에 각종 치즈가 담긴 안주를 주문했다.


“크리스마스 칵테일 두 잔이면 어떠세요?”

“네...그걸로 주세요.”    






下편에서 계속 -














  정세진 anais21@hanmail.net

   술 권하는 유목민.

   낯선 문화, 낯선 술을 찾아 헤매는 농경사회 노마드로 살아가고픈.





제목 크리스마스 in 술다방 -上-
  • 작성일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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